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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구성된 단일유산으로,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 특히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암각화 그림은 주제에 따라 인물상, 동물상, 배와 같은 수렵이나 어로를 표현한 도구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암각화에 표현된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예술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울주 천전리 명문화 암각화>는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오랜 기간 동안의 조각과 그림, 명문 등이 기록되어 있는 유적이다.
암각화 하부에는 선각화와 명문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800자가 넘은 글자 가운데 계사년(지증왕 14) 을사년(법흥왕 12) 등 6세기의 명문이 다수 확인되어 삼국시대부터 명문이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의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신라 왕실은 물론 종교문화 등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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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색의 종이에 은색 글씨로 경전을 옮겨 쓴 것으로, 유송(劉宋)의 구나발마(求那跋摩)가 번역한『보살선계경』9권 가운데 제8권이다. 종이를 길게 이어붙인 두루마리 형태이며, 사경 말미에 '至元十七年庚辰歲高麗國王發願寫成銀字大藏'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려 충렬왕 6년에 국왕의 발원으로 銀字院에서 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경 내부에는 계선을 가늘게 구획하였고, 경문은 매 행마다 열네글자의 단정한 해서체로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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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는 1489년에 제작된 청화백자로, 구연 내면에 새겨진 ‘홍치(弘治)’ 라는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작은 구연과 풍만한 어깨, 잘록한 허리를 갖춘 기형은 조선 전기 백자 항아리 가운데에서도 어깨와 허리의 대비가 뚜렷한 형태로, 생동감 있는 조형미를 보여준다. 구연부에는 연꽃 넝쿨무늬를 두르고 몸체 전면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대담하게 배치하여 길상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 항아리는 조선시대 궁중의 연례와 각종 의식에서 꽃을 꽂아 두는 화준(花樽)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후 지리산 화엄사에 전해져 오랫동안 사찰에 봉안되었으며, 도난과 회수의 과정을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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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는 통일신라 9세기(863)에 제작된 왕실 발원 사리용기로, 곱돌을 가공해 만든 항아리형 기물이다. 구연부가 넓고 어깨가 부풀며 하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안정된 기형으로, 9세기 신라 사리용기의 전형적인 조형을 보여준다. 표면 전체에 흑칠을 하고 구연부와 저부에 연화문·화문을 새겨 장식하였다. 몸체 외면에는 井자형 구획을 나누어 그 안에 7자 38행의 명문을 음각하였는데, 제작 연대와 발원 배경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이 명문에는 경문왕이 함통 4년(86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동화사 비로암에 삼층석탑을 건립한 사실과 불사에 참여한 승려와 관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역사 기록물로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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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부석사명 향완>은 1739년에 제작된 불교 공양구로, 사찰 의례에서 향을 공양하는 데 사용된 기물이다. 이 향완은 노신, 간주, 원형 받침대로 구성된 고배형 향완의 기본 구조를 갖추면서도, 몸체를 원통형으로 만들고 구연의 전에 동 테두리를 두르는 등 고려시대 향완과는 구별되는 세부 형식을 보인다. 철제 주물 바탕에 은을 쪼음입사로 시문한 제작 기법은 조선 후기 철제 공예의 특징을 반영하며, 철제 향완 가운데 쪼음입사 기법이 적용된 유일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사용처가 ‘己未年 三月日, 太伯山 浮石寺’임을 알 수 있고, 준제다라니와 팔괘 등의 문양 사용을 통해 당시의 신앙 경향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 작품은 고려 고배형 향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재료와 기법, 장식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조선 후기 불교공예의 제작 경향과 기술적 전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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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을사」명 청동 금고>는 불교 의례에 사용된 범음구 가운데 하나로, 청동으로 제작된 타악기이다. 지름 46.0cm 규모로, 앞면을 당좌구·내구·외구의 동심원 구획으로 나누고, 당좌 중앙에는 연자를, 내구에는 간엽이 표현된 연판문을, 외구에는 운문을 표현하였다. 뒷면에는 너비가 넓은 전과 폭이 좁은 공명구를 두고, 상부 측면에는 고리를 달아 용가에 걸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옆면에 음각된 명문을 통해 1185년(을사년) 6월 인복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일원의 장수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한 발원 내용도 함께 드러난다. 이 금고는 뒷면의 전이 넓고 공명구가 좁은 고려 청동금고의 2형식에 해당하며, 당좌구에 자방이 정착한 점은 12세기 후반의 특징을, 연판문 사이에 간엽이 표현된 점 등은 13세기 초의 양식을 반영하여, 고려 청동금고 양식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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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납작하고 둥근 금속제 타악기로, 한 쌍을 양손에 들고 넓은 면을 맞대어 소리를 내는 불교 의식용 법구이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대안3년」명 청동바라>는 국내에 현존하는 바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1087년(고려 宣宗 4년)에 제작된 유물로, 총 4점 중 3점에는 동일한 명문이 새겨져 같은 해에 함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1점은 사용 중 파손 등으로 인해 이후 짝을 맞추기 위해 추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바라는 방짜 기법으로 두드려 만들었으며, 중앙에 반구형 돌출부와 손잡이용 구멍을 갖춘 구조로, ‘大安三年歲次丁卯七月日造廣州牧官春秋般若道場鈸者’ 이라는 명문을 통해 광주목관이 봄·가을에 설행한 반야도량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 당대 바라와 유사한 형식을 보여 통일신라 바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기준 자료로, 제작 시기·주체·사용 목적이 명확히 밝혀진 점에서 고려시대 불교 의식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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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조 필 파초도(正祖 筆 芭蕉圖)>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왼쪽으로 치우쳐 비탈진 바위 위에 핀 국화의 모습을 옅은 먹을 사용하여 간결하게 표현하였으나, 국화의 줄기와 잎은 짙은 먹을 사용한 것이 대조적이다. 이러한 먹의 농담 및 강약의 조화를 통해 단순한 구도를 취한 화면 내에서도 생동감을 느끼게 하며, 국화꽃 위에 가볍게 앉아 있는 메뚜기의 모습을 화면을 정취를 더한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萬川明月主人翁(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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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린 작품이다.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면 왼쪽 아래에 괴석을 두었고 괴석 끝 부붙에서 파초 줄기가 올라가는 간결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균형잡힌 배치와 구도가 어우러져 단순한 소재를 표현하였으나, 특징적인 요소를 잘 구현해 내고 있다. 특히 먹색의 짙고 옅음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함께 파초 잎의 변화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정조의 호(號)인 홍재(弘齋)가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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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주요 행사를 그린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 8폭 병풍의 첫 번째 폭에 해당되는 그림이다. 그 중 <봉수당진찬도>는 현륭원 행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一周甲)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진찬례는 화성행궁에 도착한지 사흘째인 윤2월 13일에 봉수당에서 거행되었다. 화면은 상단에 위치한 봉수당으로부터 중량문을 지나 하단에 좌익문을 연결하는 행각과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각 안쪽에서 다양한 진찬광경이 그려져 있으며 중앙에는 여령(女姈)들이 음악에 맞추어 일종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세부 묘사가 정밀할 뿐만 아니라, 필치와 완성도 면에서도 뛰어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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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소장 <희경루방회도>는 1546년(명종 1)의 증광시(增廣試)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만나 방회(榜會)를 갖고 제작한 계회도(契會圖)이다. 화면은 위로부터 제목, 그림, 좌목(座目), 발문(跋文)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구성부분은 붉은색 선으로 경계를 짓고 있다.
가운데 그림은 희경루(전라도 광주 소재)에서의 연회장면과 주위 경관을 묘사하였는데, 화면 왼쪽의 연회장에서는 주인공과 기녀들, 악공, 군졸들의 모습을 그렸다. 인물표현 외에도 풍경의 나무표현과 산의 질감 묘사 등에서 당시 유행하던 화풍의 특징과 양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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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용연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는 법회 장면을 묘사한 작품인 로 석가모니불 주위로 합장하고 있는 여러 보살들,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를 비롯한 여러 신중들이 황색으로 어우러진 구름 사이로 부처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였다. 화면 아래 좌·우측에는사천왕이 칼과 보탑, 용과 여의주를 각각 들고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1777년(정조 1)에 화승(畫僧) 정총(定聰)을 비롯해 총 11명의 화승이 함께 제작하였는데, 화면 하단 중앙에 화기(畫記)가 온전히 남아있어 <대구 용연사 영산회상도> 조성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