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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眞影)은 불교의 덕 높은 고승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쓰인 “□□國弘濟尊者松雲堂大和尙之眞”이라는 영제(影題)를 통해, 이 작품이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사명대사의 진영임을 알 수 있다. 사명대사는 높은 등받이 의자에 앉아 약간 오른쪽을 향한 채 불자(拂子)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부릅뜬 큰 눈, 길게 늘어진 수염, 묵중한 하반신의 묘사를 통해 용맹하고 위엄 있는 인상이 강조된다.
현재 사명대사 진영은 여러 사찰에 전해지는데, 전반적인 풍모는 유사하나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에서는 특히 부릅뜬 눈과 풍만한 수염, 유려하게 흐르는 가사 자락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문파가 형성되면서, 각 문파에서는 조사 및 고승의 진영을 제작하여 사찰에 봉안하였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명대사 진영이 여러 곳에 전승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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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수정암 석불좌상>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 뒷편 수정암지(水晶庵址)에 훼손된 상태로 흩어져 있던 것을 동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높이 97㎝, 대좌 높이 120㎝의 비교적 규모가 큰 불상으로 팔각연화대좌 위에 가부좌를 하고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상이다. 일부분이지만 광배도 남아 있어 불신과 대좌, 광배를 다 갖추고 있는 중요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사좌연화 대좌'와 관련성이 있으며, <법주사 수정암 석불좌상>은 팔각연화대좌의 하대석에 8사자가 새겨져있고, 불상 양식 등으로 보아 9세기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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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비상은 비석 형태로 다듬은 돌에 부처와 보살을 조각하고 발원 내용을 새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초까지 유행하였으며, 현재까지 약 7점이 확인되는데 주로 당시 백제 권역에 해당하는 세종시에서 발견되었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삼존불비상>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서 출토되었다. 비교적 무른 납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앞면에는 연화좌 위 좌상 여래와 입상의 협시 보살 조각되어 있다. 불·보살의 옷주름, 광배에 표현된 꽃무늬, 연꽃 대좌와 보살의 장신구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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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말로, 공양과 존경을 받을 만한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를 의미한다. 경전에서는 나한상의 도상을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상이나 보살상에 비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소조나한상>은 길게 뻗은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살짝 고개를 든 자세를 통해 진중하고 근엄한 표정을 자아낸다. 이마는 물론 콧등과 입가에도 깊은 주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나한의 연륜과 사색하는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서역이나 인도의 고승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얼굴 표현은 이 나한상이 지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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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아미타삼존상>은 광배의 윗부분을 잃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연화대좌위에 앉은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 사이에는 입상의 승려상이 있다. 본존인 아미타여래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선정인을 취하고 있고, 좌협시 관음보살은 화려한 보관과 장식을 갖추고 우협시 지장보살은 두건을 쓴모습이다. 광배에는 각각 사자좌·코끼리좌 및 반가좌의 자세를 취한 화불이 표현되어 있으며, 원래 5구로 대칭을 이루었을 것이다. 아미타·지장·관음의 삼존 구성은 당시 신앙적 변화와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는 요소로, 고려 후기 아미타정토 신앙의 유행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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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감(佛龕)이란 불상이 봉안된 감실(龕室)을 지칭하며, 인도와 중국의 석굴사원과 같은 거대한 벽감(壁龕)부터 호지용(護持用) 또는 예배용으로 제작되었던 독립된 형태의 불감까지 모두 불감이라 한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목조아미타삼존불감>은 개폐가 가능한 원통형 이동식 불감으로, 복장공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조성시기와 증명(證明)을 비롯한 참여 승려 및 시주자를알 수 있다. 불감 안쪽으로 나무 자체를 파서 부조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으며 본존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지장 보살입상의 삼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감 가운데 가장 이른 1637년에 조성된 것으로 조선 후기 불감의 모본(模本)이자 기준작으로 중요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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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동자상>은 어린 소년의 모습을 통하여 불교의 청정한 세계를 표현한다. 문수동자상은 보살이면서 동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명부신앙의 유형과 더불어 많은 동자상이 조성되었다. 푸른색으로 채색한 사자는 커다란 눈에 입을 벌린 표정이 사납기보다 해학적인 느낌을준다. 사자 위, 연화좌에 동자상이 앉아있는데, 가부좌를취하고 두 손 위에는복숭아를 들고있다. 쌍계머리를 하여 어리고 순수한 동자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황색으로 채색한 사자도 해학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주며, 그 위 연화대좌위에 앉은 동자상은 가부좌를 취하고 두 손에 연꽃 봉오리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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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협인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으로, 내부에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고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삼층 또는 오층 석탑과는 달리,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상층부에 당나귀의 귀처럼 생긴 장식과 네모난 돌로 구성된 탑신 형태는 중국 오월국(吳越國, 907–978)의 영향을 받은 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동국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이 석탑이 유일하다. 탑의 하단에는 각각 두 분의 불상이 새겨져 있으며, 중간에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이 새겨져 있어 예불과 교화를 위한 조형적 역할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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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용연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는 법회 장면을 묘사한 작품인 로 석가모니불 주위로 합장하고 있는 여러 보살들,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를 비롯한 여러 신중들이 황색으로 어우러진 구름 사이로 부처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였다. 화면 아래 좌·우측에는사천왕이 칼과 보탑, 용과 여의주를 각각 들고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1777년(정조 1)에 화승(畫僧) 정총(定聰)을 비롯해 총 11명의 화승이 함께 제작하였는데, 화면 하단 중앙에 화기(畫記)가 온전히 남아있어 <대구 용연사 영산회상도> 조성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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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소장 <희경루방회도>는 1546년(명종 1)의 증광시(增廣試)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만나 방회(榜會)를 갖고 제작한 계회도(契會圖)이다. 화면은 위로부터 제목, 그림, 좌목(座目), 발문(跋文)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구성부분은 붉은색 선으로 경계를 짓고 있다.
가운데 그림은 희경루(전라도 광주 소재)에서의 연회장면과 주위 경관을 묘사하였는데, 화면 왼쪽의 연회장에서는 주인공과 기녀들, 악공, 군졸들의 모습을 그렸다. 인물표현 외에도 풍경의 나무표현과 산의 질감 묘사 등에서 당시 유행하던 화풍의 특징과 양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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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주요 행사를 그린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 8폭 병풍의 첫 번째 폭에 해당되는 그림이다. 그 중 <봉수당진찬도>는 현륭원 행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一周甲)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진찬례는 화성행궁에 도착한지 사흘째인 윤2월 13일에 봉수당에서 거행되었다. 화면은 상단에 위치한 봉수당으로부터 중량문을 지나 하단에 좌익문을 연결하는 행각과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각 안쪽에서 다양한 진찬광경이 그려져 있으며 중앙에는 여령(女姈)들이 음악에 맞추어 일종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는 세부 묘사가 정밀할 뿐만 아니라, 필치와 완성도 면에서도 뛰어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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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린 작품이다. <정조필 국화도(正祖筆 菊花圖)>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면 왼쪽 아래에 괴석을 두었고 괴석 끝 부붙에서 파초 줄기가 올라가는 간결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균형잡힌 배치와 구도가 어우러져 단순한 소재를 표현하였으나, 특징적인 요소를 잘 구현해 내고 있다. 특히 먹색의 짙고 옅음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함께 파초 잎의 변화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정조의 호(號)인 홍재(弘齋)가 찍혀있다.